라이프로그


너무 오래 안와서 블로그 주소까지 까먹었었다.

3달정도 됐군.

다른 일들이 많아서 올 생각을 못했다.

앞으로도 자주 못오겠지만. ㅋ

지난 날들 14 유학 준비 이야기

12월 초에 서울대 경영대학원 발표로 예정되어 있던 날의 전날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경영대학원에 같이 지원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서울대 발표났다. 들어가봐. 난 붙었어 ㅋ"

왜 아침부터 발표를 했는지 의아했지만, 컴퓨터를 켜고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보니까 일반대학원 전체가 한꺼번에 발표를 이미 한 모양이었다. 결과를 확인해보니 합격이었다. 
기뻤다. 기념으로 합격증을 하나 출력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발표는 이틀쯤 전에 이미 났던거더라. 뒷북친거..;

로스쿨은 12월 말쯤에 한꺼번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원자들의 요청에 의해, 몇몇 학교들이 발표 예정을 앞당긴다고 하더니, 
급기야는 대부분의 학교가 발표를 일찍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대, 고려대도 원래 예정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발표하게 되었다. 서울대가 금요일, 고려대가 토요일 발표였다.
발표가 나기로 되어있었던 금요일, 긴장되는 마음으로 인턴 회사에 출근했다.
서로연과 발표 사이트를 계속 보다보니, 12시에 발표할거라는 글이 보였다.
12시에 점심을 안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12시가 되어 사무실의 불이 꺼져서 어두워졌다.
그리고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긴장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넣었다. 
합격이었다. 
정말 기뻤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방황하던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눈물도 찔끔 나왔다.
바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부모님도 매우 좋아하셨다. 곧 인턴도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고려대도 결과를 확인해보니 합격이었다.
서면 면접이 좀 불안했는데, 잘 봐준 모양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학원 입시는 끝이 났다.
운이 좋아서 국내 대학원은 지원한 곳 모두에서 합격할 수 있었다.
(여러개 붙는다고 돈주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뭐 아주 좋은 일이겠냐 싶기도 하지만)
CFA는 나중에 확인해봤더니 떨어졌다. 붙은 것만 말하고 떨어진건 적어놓지 않는다면 비겁한거겠지. ㅋ
여름때 좀 공부하다가 그 뒤에는 인턴이랑 로스쿨 (그리고 작업질) 때문에 거의 공부 못했던걸 생각해보면
붙기를 바라는게 지나친 욕심인거 같다.; 그나마 시험전 1주일 정도 공부 했지만 그때도 거의 집중도 안하고 대충 봤던터라..
나머진 그렇게 못보진 않았는데, 아예 한글자도 못보고 들어갔던 alternative investment랑, 
좀 불안하다 싶었던 윤리, 회계에서 점수가 많이 낮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경제학, 통계학, 파생상품 등은 잘 나온 편이었고..
앞으로 이걸 다시 볼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보면 어떻게 공부해야할지라던가 이런걸 대강 알테니 좀 더 수월할거같다.

기록해둘만한 사건은 여기까지다. ㅋ
이제 열공해야지. ㅋㅋ

지난 날들 13 유학 준비 이야기

원래 로스쿨 전형에서 1차를 붙은 뒤에, 회사를 그만두고 면접준비 학원을 다닐까도 생각해봤다.
같이 준비했던 친구도 당장 그만두고 학원 다니라는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왠지 내키지를 않았다. 학원을 다니는게 큰 도움이 될지 좀 의심스러웠다.
무엇보다도, 학원을 안다닌다고 꼭 떨어질거 같진 않았다.
아무래도 다니면 도움은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효용성에 비해 학원비가 지나치게 비쌌다.
그래서 그냥 회사를 다니고, 학원은 안다니고 스터디만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긴 했지만 스터디를 가는건 항상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핑계긴 하지만, 그동안 별로 말을 많이 할 일이 없었다. 이공계 수업은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스터디를 하면서 한 5~10분을 혼자 지껄일수 있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하는데 나는 너무 못했다. 심하게 차이 났다.
그래도 하다보니 조금씩 늘어서, 스터디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 나아졌다.
1주일에 이틀 스터디를 했는데, 나머지 시간은 퇴근후 집에서 혼자 주제를 놓고 시간을 정하고 말하기를 연습했다.
컴퓨터로 내가 말한걸 녹음해서 다시 들어보고, 이건 어떻게 고쳐야겠다 혼자 생각하고, 뭐 그런 식으로 했다.
서울대 면접 전날까지도 저런 식으로 했다.

면접날이 되었다. 오전반이었다.
면접 스터디를 같이 했던 사람이랑 같은 대기실이라 반가웠다. 잠깐 얘기를 했다.
나는 맨 처음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문제 2개중에 골라서 10분인가? 보고, 들어가서 교수들이랑 면접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2개중에 못골라서 한참 헤맸다. 어느게 더 쉬울지 감이 안왔다.
간신히 하나를 골라서 대충 생각하다보니 시간이 지나갔다.
면접은 20분간 진행되었던걸로 기억난다.
2가지 반대되는 입장 중 하나를 고르고, 그 입장에 서서 내 주장을 말하고,
그랬더니 교수는 반대입장에 서서 주장해보라고 하고, 다시 원래 입장에 서서 거기에 반론해보라고 하고, 그 반대로 또 하고..
그런식으로 열심히 대답하다보니 20분이 지났다.
진땀이 흘렀다.
나중에 나와서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교수한테 많이 까였다더라.
그냥 여기 면접 스타일이 좀 그런거 같았다. 
면접을 잘 본건진 감이 안잡혔지만 어쨌거나 좀 후련했다.

그 다음주가 고려대 면접이었다.
같이 썼던 친구가 있어서, 면접때 만났다.
오전에는 서면 면접을 봤는데, 법적 지식을 묻는 문제들 같았다.
난 그냥 아는 대로 썼다. 아는 대로, 그냥 생각가는 대로, 논리적이라 생각하는 방향으로 썼다.
30분 정도 남아서 일찍 나왔다.
오후에는 대면 면접을 봤는데, 친구랑 같은 시간에 들어갔다.
여기서도 문제 2개중 하나를 고르는 거였는데, 1개가 준비해본 주제랑 비슷해서 주저않고 바로 그걸로 골랐다.
이거 면접은 5분동안 혼자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교수의 추가질문은 거의 없었다.
난 한 4분 정도 말했던거 같다. 그 뒤에 추가질문 하나가 있었고, 바로 끝났다.
여긴 면접을 좀 잘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거의 비슷하게 끝나서 같이 나왔다. 친구도 같은 질문을 골랐다더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치킨에 맥주를 같이 먹었다.
이 면접을 끝으로, 나의 대학원 지원은 모두 끝나게 되었다.
정말 홀가분하고, 결과야 어찌되었든 끝나게 되어 너무 행복했다.

고려대 면접이 끝난 뒤, CFA 시험까지 2주가 남아있었는데, 
그동안은 인턴 출근과 로스쿨 면접 준비를 하기에도 바쁜 상황이어서 CFA 준비는 거의 못했었다. 사실상 포기했다.
포기했다고 생각하니 공부가 더 안됐다. 마침 그 즈음에 연애의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0-
CFA따위가 문제냐? 퇴근하고 저녁시간에 데이트 하는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몇몇 과목은 한번도 보지도 않은채, CFA 시험을 봤다.
CFA 시험을 보던 날이 아주 추웠던게 기억난다. 
밥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거리의 벤치에서 벌벌 떨면서 싸왔던 도시락을 먹었던게 기억난다.
짐을 못 갖고 들어가고 죄다 바깥에 놔둬야 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래저래 좀 이상한 시험이었다 -_-
오전오후 몇시간동안 시험을 보니 기진맥진했다. 집에 와서 쉬었다.
붙을거 같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생각보단 풀만했던거 같아서..

(거의 포기하긴 했지만) CFA를 끝으로, 할 일은 정말 다 끝나게 되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게임이라도 할 법한 시기였건만, 데이트 하느라 바빴던거 같다.
CFA 볼 즈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결과를 기다리면서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날들 12-2 유학 준비 이야기

그냥 이건 좀 변명의 차원에서 쓰는건데..

여러 군데에 원서를 쓴다는건 어찌보면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수도 있다. (복수합격한다면)
그런데 내 경우에는, 선호도가 높은 곳이 늦게 결과발표가 났다.
(내 선호도는 대충 로스쿨 >= 경영대학원 쯤이었다.)
그렇다면 선호도가 높은 곳에 결국 떨어지게 되었을때, 
선호도가 낮은 곳에 지원해서 붙어놓지 않는다면 나는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된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원서비를 탕진하고 쓸데없는 힘을 들여가면서 죄다 원서접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로스쿨 입시 전형이 좀 빨리 진행이 되어서 일찌감치 결과발표가 났다면 한군데 정도는 덜 썼을지도 모르겠다.

소신을 갖고 한가지의 목표를 놓고 살아가는게 더 좋을수도 있지만
살다보면 위험관리를 해야하는 면도 있는거고..
난 별로 소신있는 인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ㅋ

대충 기록으로 남길만한 이야기는 다 써가는거 같은데 ㅋ 글로 써놓으니 뭔가 뿌듯하네 ㅋㅋ

지난 날들 12 유학 준비 이야기

곧 많이 바빠질거 같아서 최대한 써둬야 할거 같다.


9월 1일부터 인턴 출근을 시작했다. 마침 그 즈음에 여의도까지 가는 9호선이 뚫려서 좀 더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사실 9호선이 없었으면 거기 말고 좀 더 가기 편한 곳에 지원했을거다.ㅋ)
하루동안 간단하게 연수를 받고, 바로 다음날부터 부서로 배치되었다.
하루 연수 받는건 별거 없었는데, 서비스 교육 받는게 좀 인상깊었다.
별건 아니고, 인사같은거 잠깐 시키고, 비즈니스 매너-_- 를 교육시키는데
강사가 중간에 이렇게 말했다.
"명함을 상대방에게 건네줄때에도, 자기 이름이 보이는 방향으로 건네줘야지,
 그걸 다른 방향으로 건네주면 상대방이 '아 이사람은 이런 기본도 안되어있구나' 하겠죠?
 그런 사소한거에서부터 상대방을 판단하게 되는거니까요."
정확하진 않아도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듣고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딴걸로 상대방을 판단할 정도라면, 대체 비즈니스 매너라는건 얼마나 쪼잔하고 병신같은 짓인건가..
저 인간들이야 그따위 것들을 교육시키고 '아 이런게 중요하구나' 하고 상대방한테 세뇌시켜야
지들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도대체가 명함 건네주는 방향 따위를 중요시하는 짓의 어느 부분이 '매너'인지가 궁금하다.

하여튼 그래서 그날 오후에 부서에 가서 인사하고 퇴근했다.
같은 부서에 인턴이 2명 더 있었다.
처음엔 뻘줌했는데, 나중엔 좀 친해져서 커피도 같이 마시고 그랬다.

그 때부터 인턴질이 시작되었다.
처음 이틀 정도는 좀 긴장했는데, 얼마 안가서 긴장은 풀려버렸다. 
내가 있던 부서가 일이 많은 편이고, 고정된 업무를 하는게 아니라 프로젝트 형식으로 계속 다른 일을 하는거라
내가 할 일이 좀 애매했다.
사실상 혼자서 무슨 프로젝트 하나를 하게 되긴 했는데, 그게 전혀 중요한 프로젝트가 아니고
사실상의 research 비슷한거고 파일럿 프로그램에 가까운거라 위에서도 별로 신경쓰진 않는거 같았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렇다고 거기서 다른 직원들 다 보는데 책을 읽고 있기도 좀 민망했다.
그래서 CFA 공부는 그때부터 무척 지지부진해졌다.
나름대로 출퇴근을 하면서 지하철, 버스에서 시달리다보니 갔다오면 피곤해서 공부하기는 힘들었다.
회사에서 하는 업무라던가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배운점이 없잖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딱히 하는건 없는 시간이었다. 
당시에 나는 다른데서 청년인턴하면서 나처럼 시간을 때우던 다른 친구와 메신저를 하며 시간을 축냈다.
가끔 같이 인턴하는 사람들과 커피마시며 잡담도 하고.
나중에 가서는 매일 1시간 넘게 인턴들이랑 커피마시러 나가곤 했다.
시간이 좀 아까웠지만 때려친다고 딱히 뭘 할거 같진 않았다.
그리고 리서치 할게 계속 조금씩 있긴 했다. 압박이 크진 않았지만 가끔씩 담당 과장이 확인을 해서, 업무를 하긴 해야했다.

9월 중에 리트 점수가 나왔는데, 예상보다 10점 정도 높게 나왔다.
서로연에서 예측한답시고 사람들이 올렸던 평균점수가 너무 높았던거다. 실제 평균점수는 훨씬 낮았다.
그래서 내 표준점수가 예상보다 훨씬 올라간거다.
기분이 좋았다.

이제 지원할 학교를 골라야 했는데, 서울대를 쓰는건 확실했고, 고려대를 쓸지 말지가 좀 고민이었다.
그런데 리트시험을 신청할때나, 컬럼비아 디파짓을 냈을 때처럼,
불확실하다면 그 비용 약간 드는걸 감수하더라도 최대한 이것저것 해보는게 나을거 같았다.
붙고나서 결정해도 되는거니까.
그래서 결국 고려대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할때 낼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는데, 면접 겸 자기소개서 첨삭하는 스터디를 들어갔다.
한 3~4번 자기소개서 첨삭하는걸 했는데, 그 뒤에 흐지부지 되면서 면접스터디는 한번도 안하고 깨졌다.
그래도 그 때 자기소개서 첨삭하는건 많은 도움이 되었던거 같다.
로스쿨 자기소개서는 좀 열심히 썼던거 같다. 첨삭을 받고 나서도 수십번 다시 보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회사에 출근하느라 학교에 가서 낼수가 없어서, 어머님이 대신 가서 내주셨다.

그 즈음에 서울대 경영대학원도 원서접수 기간이 되었다.
여기 원서접수기간 좀 전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서울대를 쓸지 말지 잠시 고민을 했다.
같은 경영대학원이면 어디를 가는게 나을까...카이스트가 낫다면 굳이 힘들여서 서울대를 쓸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일단 써보고 붙고나서 생각하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카이스트는 다녀봤으니 서울대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이 캠퍼스가 따로 있어서 너무 작다는 점, 학비가 비싸다는 점도 좀 걸렸다.
그래서 일단 서울대도 쓰기로 결정했다.
여긴 추천서가 하나 필요했는데, 유학 지원때 추천서 받았던 교수님들께 가기는 좀 염치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다른 교수님한테 가서 받았다. 
그거 부탁하느라 하루 휴가내고 학교를 가야했는데,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좋긴 했지만 
학교에서 한 4시간 있었더니 답답해져왔다. 예전에 지낸 곳이니 추억이 되어야 할텐데 그냥 답답하고 싫었다.
거길 벗어난건 지금 생각해도 매우 잘한 일이었던거 같다. 좋은 학교지만 나랑 안맞는 곳이었다.

로스쿨 2군데와 서울대 경영, 총 3군데에 원서를 다 넣고, 면접준비도 해야했겠지만 
1차 발표가 나고 붙으면 그 때 시작해도 되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면접 준비는 뒤로 미루고 있었는데
1차 발표가 다 나서, 세군데 다 면접을 봐야 했다.
경영대학원이야 크게 준비가 필요하진 않을거 같았지만, 로스쿨 면접은 생소해서 면접 준비를 해야할거 같았다.
그래서 뒤늦게 스터디를 알아보다가 하나 구할 수 있었다. 인턴업무 마치고 퇴근한 뒤에 하는 스터디였다.
매주 2번씩 해서, 면접때까지 총 5~6번 정도 했던거 같다.
나만 이공계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문과 출신이었는데
다들 너무나 말을 잘하고 나 혼자 지나치게 버벅여서,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초반엔 스터디를 가는게 긴장될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하다보니 좀 말빨이 늘어나는거 같았다.
내 스스로도 살아오면서 말을 정말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연습하니 나아지는거 같아서 신기했고 뿌듯했다.
내가 다른 스터디원들에게 도움이 되진 못했던거 같은데, 결과적으로 나는 너무 많은 도움을 받은거 같아서 고맙고 미안했다.

당시 내가 하던 청년인턴은 대개 취직이 안되어서 온 사람들이고, 인턴을 하면서 여기저기에 원서를 넣는다.
나도 분위기 따라서 몇몇 회사에 원서를 넣기도 해보았는데, 붙은 곳도 있고 떨어진 곳도 있었다.
개중 한 곳에서 서류와 인적성을 붙어서 면접을 봐야했는데, 거기 면접이 서울대 경영대 면접 전날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 면접은 저녁에 끝나고, 서울대 면접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물리적으로 겹치진 않았지만, 둘 다 가는건 좀 무리인거 같았다.
그래서 회사 면접을 포기하고 서울대 면접 준비를 했다.
서울대 경영대 면접을 보러 갔는데, 나랑 같이 원서를 썼던 친구가 두세명 정도 있었다.
그 중 나랑 같이 오전에 면접보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오전반 중에서도 거의 제일 처음에 면접을 봤고 그 친구는 오전반 중 거의 맨 마지막에 봤다고 한다. 점심시간 근처에 했다고..
면접은 문제를 하나 주고, 그거에 대해 교수에게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자세한 문제를 쓰자면 길어서 패스하고, 통계학 중 복원/비복원 추출에 대해 나왔다.
문제를 20분인가 30분인가 풀고, 방에 들어가면 교수 2분이 계신다.
면접시간은 5분인가 10분인가, 하여튼 짧다.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대한 추가질문이 아주 약간 있었다. 
통계 개념은 다 기억나는데 용어가 잘 기억이 안나서 살짝 버벅였다. 모집단이라는 단어가 기억이 안나더라고 ㅋ
그 뒤에 신상질문이 약간 있었는데, 수학 잘하냐고 물어봤고, 왜 이 분야를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봤다.
지원동기는 준비해뒀던거라서 그럭저럭 잘 대답했던거 같다. 
면접 시간이 짧아서 면접의 영향력이 클지 좀 의문이었다.
하여튼 그럭저럭 면접을 보고 홀가분하게 나와서 곧 있을 로스쿨 면접을 계속 준비했다.

지난 날들 11 유학 준비 이야기

7월 초에 장학금 떨어진걸 알게 되었고, 리트 시험은 8월 말 예정이었다.
당시 나의 계획은, 일단 국내의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에 지원해볼 생각이었다.
유학 붙은 곳은 입학을 1년 미뤄둔거라 1년 뒤에 갈 수도 있는거지만
1년 뒤에 가더라도 거기에서 1년차에는 장학금을 못받는게 거의 확실했고, 
그렇다면 가정형편상 가기에 좀 부담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국내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을 써서, 붙으면 그 중 다시 선택할 생각이었다.
다 떨어지면 취업준비나.....좀 부담되는걸 각오하고 유학을 갈 생각이었고.
경영대학원은 서울대랑 카이스트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둘 다 되면 어딜 갈지는 고민이겠지만,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은 너무 소규모라서 서울대 쪽에 더 끌리고 있었다.
카이스트쪽이 학비가 훨씬 더 비쌌고, 장학금 혜택도 최근에 많이 줄었다고 듣기도 했다. 
어쨌거나 경영대학원은 지원하는데에 딱히 준비할게 많진 않았고
당장 중요한건 리트 시험이었다.
준비할 시간이 2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리트 시험이 공부한다고 많이 오르는 시험은 아니어서 크게 걱정은 안했다.
감을 잡는다는 기분으로, 친구가 줬던 문제집들과 PSAT, MEET, DEET 문제를 구해서 풀었다.
그 즈음에 혼자 도서관에 다니면서 굉장히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유학을 미루고 미래는 불확실한데,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었다.
도대체 잘 한 결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학을 1년이나 미뤄두고 이러고 있는데 로스쿨 진학이나 다른 것들에 다 실패하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거 같았다.
그즈음의 어느날에는 밤에 친구 몇명과 맥주를 마셨는데, 할 말도 없고 갑자기 너무 우울하고 죽고 싶어지는거다.
그래서 몸이 안좋다고 하고 먼저 나왔다. 죽을 용기는 없어서 밤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집에 들어왔다.

리트는 딱히 공부량이 많은 시험은 아니다. 공부 하나도 안해도 잘 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괜히 시간이 남아서 스스로 해이해지고, 우울해지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CFA 시험을 질렀다.
CFA랑 리트를 병행해서 하다보니 조금은 더 바빠지고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래도 그 여름은 굉장히 우울했던 시기였다.

7월 말쯤에 로스쿨 준비하는 다른 친구, 선배들과 술을 마셨는데
텝스 성적이 하나정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군대에서 유학준비때문에 봤던 토플 점수가 있긴 했는데, 
토익같은걸로 환산했을때 썩 높지는 않은 점수라서 (토플에게 환산점수가 좀 짠거같다.)
텝스를 한번 보기로 했다.
8월 2일에 시험을 보기로 했다. 시험 신청을 늦게 해서 추가비용을 냈다. 시험까진 1주일이 남아있었다.
1주일간 공부해서 얼마나 잘 나오겠냐 싶었는데, 그래도 기본실력이 영 없지는 않으니 한번 보기나 하자 하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1주일동안 봤는데, 텝스 유형이 어떤건지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던거 같다.
그러고 시험을 봤는데, 800점대 중반이 나와서 1주일 준비한거 치고는 썩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8월 3일에는 토플을 봤었는데, 2009년 8월 2일에 텝스를 봤다는게 좀 웃겼다.
8월 3일은 내 생일이었는데 하필 그 근처에 꼭 시험을 보게 된다는게..
그것도 하나는 유학준비때문에 본거고, 하나는 로스쿨준비때문에 봤다는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PSAT 언어영역 같은걸 풀어보면 점수가 잘 나왔다. 40개 중에 3~5개 정도 틀렸다.
수능때에도 언어는 공부 안한거 치곤 잘 나와서 그런 유형의 문제에 조금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리트는 크게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도서관에 다니긴 했지만 쉬엄쉬엄 공부했다.

8월즈음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도 모집을 해서, 원서 접수를 했다.
다른 대학원보다 굉장히 빨리 모집하는 편이다. 학기 시작도 빠르고..
서류를 붙고 8월 31일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같이 썼던 친구들은 다 시간이 달라서 보지는 못했다.
면접때엔 별다른걸 묻지는 않았다. 
내가 금융공학을 하겠다고 썼었는데, 왜 다들 금융을 하려고 하느냐는 훈계의 말을 듣고 끝났다.;
붙일지 말지 애매한 사람이면 전공지식을 많이 물어본다는데, 그렇지 않은걸로 봐서 붙을거 같긴 했다.
면접을 본 다른 친구들한테도 물어봤더니 전공지식은 하나도 안물어봤다고 했다.
다 붙을거 같았다. 하긴 다 붙을 만한 스펙의 친구들이라..

리트시험을 8월 말에 본 뒤에 뭘 할것인지 고민을 했다.
리트시험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오면 로스쿨 원서를 쓸 준비를 해야할 터였다.
근데 원서를 쓴다는게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진 않을 터이니, 뭔가 다른걸 병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9월쯤부터는 인턴을 하나 해보기로 하고, 인턴 지원할 회사를 알아봤다.
관심있던 쪽은 금융 분야였는데, 외국계 금융회사 같은 곳은 들어가기도 힘들거 같았거니와 들어가서 일이 매우 많을거 같았다.
로스쿨 원서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데, 인턴 업무가 너무 빡세면 오래 하기 힘들거 같았다.
그래서 좀 널럴하고, 약간 재미있을거 같고, 월급도 그럭저럭 주는 (그래봐야 용돈수준이지만)
청년인턴을 지원하기로 했다. 8월 졸업 예정이라 딱 가능한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공기업 금융회사 청년인턴에 지원, 합격했다. 
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다른 곳의 인턴 기회를 시도하지 않고 청년인턴 따위를 하냐고 몇몇 친구들이 물어봤는데,
로스쿨 지원을 위해 자유시간이 좀 있을 곳을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어쨌거나 합격해서,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9월초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뭔가 할 일이 생긴다는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돈도 받고) 

리트 시험은 중앙대에서 봤는데, 거기서 시험본 몇백명의 사람중 내가 거의 맨 앞의 수험번호였다.
홍콩에 가느라 원서 접수를 일찍 해서 그랬던거 같다.
시험보는데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 실력의 60%~70%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한거 같았다.
집에 와서 답을 맞춰보니 점수가 높지 않았다. 추리논증에서만 4개 정도 실수했더라. 실망이었다.
그래도 시험 하나 끝났다고, 집에 와서 영화보고 쉬었다.
사실 마음이 후련하긴 했다.

그 당시에 서로연에서 리트 표준점수 분포에 대한 수많은 추측글이 올라왔는데,
거기에 올라온 글들에 의하면 내 점수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서로연이라는 곳 자체가 작전글이나 이상한 글이 많이 올라오는 곳이고
설사 작전이 아니더라도 점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다 싶었다.
그래서 크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사실 로스쿨에 목맨 입장이 아니기도 했고.. 되면 가고 안되면 할수없는거지 라는 생각이어서.
그러다 9월이 되어서 인턴 출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날들 10 유학 준비 이야기

장학재단에 지원할 때, 내가 어느 학교에 합격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3군데에 지원했는데 각각 다른 학교로 넣었다.
그런데 장학재단 3군데중 1군데는 서류에서 바로 탈락했다.
그런데 그 장학재단에 써냈던 학교는, 컬럼비아였는데, (가장 먼저 어드미션 받았던..)
아이비리그고 금융공학 분야에서 아주 좋은 학교긴 한데 
학비가 매우 비싸고, 뉴욕에 있어서 물가도 아주 비싸서,
대강 계산해보니 1년~1년반동안 석사과정을 밟는게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감당이 힘든 수준이었다.
어찌어찌하면 어떻게든 졸업을 할 수는 있긴 있을텐데, 
그러고 나면 고정수입이 없고, 어쩌면 빚을 져야할지도 모를 우리 집으로써는 졸업하자마자 당장 내가 돈을 벌어와야 할거고,
그런데 하필 그 당시에 금융위기가 터져서 거기 졸업해도 시민권이 없으면 미국에서의 취직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 돈 들여서 유학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취직하자니 아깝고..
그래서, 한 3달 가까이 고민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컬럼비아에는 안간다고 메일을 보냈다.
(3달간 주저하는 가운데 디파짓 500불을 내고 나서 취소했다 ㅠ 환불 안해주네 ㅅㅂ..)

나머지 2군데 장학재단에는 조지아텍 산공 phD에 붙은걸로 냈는데, 둘 다 최종면접까지는 올라갔다.
1~2주일 정도 차이로 면접을 봤던걸로 기억한다.
하나는 별로 준비를 안하고 갔었는데 (워낙 적게 뽑아서 기대도 안하고 갔고)
어버버하다가 끝났다.
문제는 다른 하나였다. 주위에서 얘기를 들으니 이거는 최종면접까지 올라가면 거의 90% 이상은 붙은거라고 했다.
난 1차나 2차에서 떨어질줄 알았는데 최종면접까지 가게 되어 너무 기뻤다.
듣자하니 면접에서 별로 물어보는 것도 없다고 하고...
그래도 저번 면접에서 어버버하다 끝난거 생각하면 이번엔 준비를 철저히 해둬야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를 좀 하고 갔다.
면접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대답도 나름 잘 했다고 생각했다.
거의 붙었다고 확신해도 될 거 같았다.

어버버했던 면접은 좀 일찍 발표가 났는데, 예상대로 떨어졌다.
그러고 다른 곳 최종 발표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즈음에 친구들과 홍콩으로 세미나 (사실상의 여행이지만) 으로 갈 일이 있었다.
가 있는 동안 최종 발표가 날 예정이었다.
떨어질거란 걱정은 별로 안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여행 출발하기 이틀 전이 LEET 신청 시작일이었다.
사실 그 즈음에 로스쿨 진학에 관심이 생기고 있었다.
군대 말년때 리트 기출문제 프린트해가서 풀어봤더니 성적이 엄청나게 잘 나왔던게 한가지 이유였고,
베스트 프렌드가 1년 먼저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게 된게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리고 좀 더 큰 이유는, 유학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4년간 지방공대를 다니면서 인문, 사회, 예술 등의 다방면의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웬만하면 공대만 있는 학교는 앞으로 가지 말자 -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필 대학원 붙은 곳이 공대만 있는 학교였던 것이다.
게다가 남녀 성비가 거의 최악; 인거 같았다.
거기 갔다가는 연애 한번 못해보고 선봐서 결혼할게 거의 확실해보였는데
공부가 아무리 좋고 성공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_-
그렇게까지 할만큼 가고 싶었던 마음이 절실하진 않았던거 같다.
그러고 보면 사실 별 생각이나 각오 없이 유학 지원을 했던게 아닌가도 싶고..
그런 고민들을 했다.

그래서 당시에 내린 결론은, 컬럼비아는 일단 학비가 지나치게 비싸고 석사과정이라 일찌감치 포기했고,
조지아텍은 괜찮긴 한데, 여기도 장학금을 못받으면 가족에게 좀 부담이 될 뿐더러,
그런 부담을 지면서까지 절실히 가고 싶지는 않은거 같았다.
그래서 장학금 결과를 보고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는데, 뭐 마지막 장학재단은 붙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출국 이틀 전에, 리트시험을 신청할까말까 고민하다가 (시험이 좀 비싸다보니..)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싶어서, 컬럼비아 디파짓 500달러도 날렸는데 리트 정도야 뭐 어떠랴 해서,
리트시험을 신청했다.
만약 혹시라도 장학금 떨어지면, 조지아텍 입학을 1년 연기해두고 (여기는 1년 연기가 가능했다.)
일단 로스쿨에 지원해보려는 생각이었다.
로스쿨이 학비가 비싸지만, 로스쿨 3년 학비랑 생활비 다 쳐도 유학 1년차에 쓸 돈이랑 크게 차이 안나는거 같았다.
잘하면 로스쿨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는거고.
방값, 생활비, 정착비용, 차사는 비용 등등 생각하면 유학 1년차에 쓸 돈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더라.
미국 거기 기숙사비만 한달에 천달러가 넘었던거 같은데 -_-
로스쿨쪽이 최소한 집에 부담은 훨씬 덜 될게 확실하고, 전망도 그리 나쁘진 않을거 같아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홍콩에서 신나게 놀다가, 장학금 발표날에, 친구 아는 선배가 그쪽 IB에 다닌다고 해서 어쩌다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원래 말주변이 없던데다 장학금 발표때문에 다소 긴장되어 말을 별로 못했다.
부모님한테 확인하고 문자 보내달라고 말해놓고 왔었다.
딱 점심시간이 발표 예정이었다.
잘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긴장하면서 핸드폰을 봤는데, 떨어졌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잠시 멍했다.
나의 운명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 선배와 헤어지고, 친구한테 장학금 떨어졌다고 말했다.
로스쿨 준비할거 같다고 얘기했다.
친구는 왜 그러냐고, 장학금 내년에 다시 지원해보라고 했다.
그래도 일단 리트 시험을 신청해뒀으니..아까워도 입학을 1년 미뤄두고 시험은 보는게 맞는거 같았다.

한국 돌아와서 부모님과 의논을 했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거 같았다.
컬럼비아를 포기할지 말지를 고민할때와는 달리, 돌아온지 이틀만에 입학을 1년 미뤄두기로 바로 결정을 내렸다.
1년 먼저 로스쿨에 진학한 친구에게서 리트 문제집을 미리 얻어뒀었다. 
그래서 결정을 내린 다음날부터 바로 도서관에 다니면서 리트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 날들 9 유학 준비 이야기

전역하고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복학은 해뒀지만 학점을 거의 듣지 않아서 수업도 없었다.
진로선택을 하려면 우선은 유학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편하게 지낸 시간이었다.

기다리면서 (졸업에 필요했던) 봉사활동과 운전면허를 땄다.
소개팅도 두 번 정도 했는데, 잘 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4개월쯤 뒤면 한국을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소개팅을 제대로 하긴 힘들었다.

전역 직후라 사회 적응을 하는셈 치고 시간을 보냈다.
인턴이나, 요리연습이라도 해뒀어야 했던 것도 같은데, 그 때는 그냥 기다리며 지냈다.
마음이 딱히 편하지만은 않았다.

간간히 리젝 메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메일은 없었다.
점점 새메일을 보는게 두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역 2주쯤 뒤인 어느 날, 운동하고 들어와서 씻으려고 하는데
페덱스에서 나한테 소포가 왔다.
'나한테 페덱스에서 올 소포가 있나?' 하고 있는데
소포를 받아 보니 주소란에 'NY'라고 쓰여 있었다.
설마..하면서 소포를 뜯어봤다. 
합격증이었다.
phD로 지원했었는데 그거 떨어졌다는 통보는 받았었고, MS로 재심사해준다고 그랬는데 MS로 합격한게 온거였다.
기분이 날아갈거 같았다.
워낙 나 지원한 쪽 분야에서는 명성이 높은 학교였다.
다른 학교에서 계속 불합격 통보를 받아서 의기소침하던 중에 받은 합격 통보라 더 기분이 좋았을거다.

한 1~2주쯤 뒤에, 다른 곳 phD 합격증도 왔다. 거기는 붙을거라는 기대를 좀 하고 있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둘 다 이메일로는 알려주지 않았다.

합격발표는 3월 말까지 다 왔다. 합격증 2개를 받은걸 마지막으로, 나의 유학 결과가 모두 나왔다.
2군데에 합격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의 정도였다.
그래도 군대에서 준비하느라 제대로 준비도 못했던 것, 
그리고 금융위기때문에 대학원으로 사람들이 몰려서 경쟁이 다른 때보다 치열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괜찮은 결과였다.

그 즈음해서 장학재단에서 공고가 났다. 유학 장학생을 뽑는다는 거였다.
난 3군데에 지원했다. 이거 자기소개서나 추천서 쓰는 것도 일이었지만, 전역한 이후라 준비할 시간이나 여건은 충분했다.
1군데는 서류에서 탈락했고 
(그런데 여기서는 작년에 학생을 뽑은게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최종 장학생을 뽑고나면 공지를 올리거나 홍보를 할텐데 그런게 전혀 없었다. 서류발표도 예정된 날짜보다 2주정도 늦게 났고..)
2군데는 서류 붙어서 면접을 봐야 했다.
5월 즈음으로 면접 일정이 있었던걸로 기억난다.
그래서 면접 준비를 조금씩 시작했다.

지난 날들 8 유학 준비 이야기

부대에 돌아와서는 SOP 작업을 시작했다. 대학교때 전공 관련해서 이것저것 해놔서, 쓰기는 어렵지 않았다.
일단 SOP 하나를 써놓고, 학교별로 조금씩 수정하는 방법으로 했다.
학교별로 중점을 둬야 하는 부분이라거나, 요구 분량이 조금씩 달라서 수정이 필요했지만
큰 틀을 놓고 수정하는 쪽으로 하니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교정을 받는게 문제였는데, 마땅히 교정을 받을 곳이 없었다.
교정 해주는 업체들이 있긴 했지만, 개중 대충 하는 곳이 많아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었다.
친한 친구 중에 영어를 네이티브 급으로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한테 한번 봐달라고 부탁하는 걸로 끝내기로 했다.
부대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여러 군데에 부탁해서 이메일을 보내고 받고 하기도 좀 벅차긴 했다.
1달 정도 SOP를 쓰고 고치고 한 뒤,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서 교정을 보내고 받으니 대충 11월쯤 되었다.
11월 중순쯤 1박 2일 외박이 하나 있었는데, 그 때 원서 제출을 다 마치는게 목표였다.
그 때 못하면 12월에 말년휴가를 써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빠른 곳은 12월까지 원서 제출을 완료해야 해서..)

SOP 교정도 받고 11월에 외박을 나왔다.
7군데 학교에 원서 제출을 하는건 번거로운 일이었다. 
아이디를 만들고, 이것저것 쓰고, SOP를 올리고.. 레쥬메를 내라는 곳도 있었고..
의외로 시간이 꽤 걸려서 복귀날 낮쯤에 겨우 다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나마 잘 마쳐서, 기분좋게 복귀를 했다.

내가 원서 제출을 완료하면, 학교 측에서 추천인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올려달라는 메일을 보낸다.
내가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독촉하기도 뭣해서, 알아서 써주시고 계시겠지 하고 생각하고 그냥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들한테서 한참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추천서를 다 쓰셨다면 한번쯤 메일을 보내주실만도 한데.
그래서 한참 기다리다 내가 메일을 보냈다. 혹시 학교에서 추천서 올려달라는 메일이 다 갔냐고.
그런데 2군덴가에서 안왔다는거다.
당황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확인을 해봤다.
알고보니, 원서를 쓰면서 추천인 이메일을 입력하는데, 그걸 잘못 입력한 거였다.
원서에 추천인 이메일 입력할 때, 난 우리학교 홈페이지에서 교수 이메일 주소를 찾아서 그걸 입력을 했다.
그 때 별 생각없이 한글 홈페이지 말고 영문 홈페이지꺼를 참조해서 했는데,
그 영문 홈페이지가 업데이트가 느려서, 몇몇 교수님들 메일의 서버 주소가 좀 바뀌었는데 그 전껄로 올라와 있었던거다.
그리고 난 그 전꺼를 봐서, 이메일 주소를 바뀌기 전껄로 제출한 거였다.
이메일주소의 서버 이름이 좀 바뀌었다 하더라도 당연히 둘 다 될줄 알았다.
설마 (영문이긴 하지만) 학과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메일 주소를, 잘못된걸 써놓을리는 없잖아.
그런데 알아보니 전 주소로는 메일이 안간댄다. ....어이가 없었다. 
교수님들께 이걸 말씀을 드리고, 어디어디를 잘못 써서 냈는지 알아봤다.
좀 정신없이 원서접수를 해서 그런지, 
이메일 주소를 한글 홈페이지에서 참조해서 낸 곳도 있었고, 영문 홈페이지에서 참조해서 낸 곳도 있었다.
그래서 확인해보니, 추천서 받은 교수님중 2분이 메일주소가 바뀌었고, 학교 2군데를 잘못 써서 냈더라.
2군데 중 1곳은 인터넷 상에서 메일주소를 고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건 고쳐서 교수님들께 메일이 잘 간걸 확인했다.
그런데 다른 한군데는 원서를 한번 제출하면 인터넷 상에서 고칠 수가 없댄다.
그래서 교수님께 직접 추천서를 서면으로 받아서, 우편으로 제출해야 한댄다.
다행이었는지 그 즈음에 포상휴가 하나가 생겼다.
그래서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추천서 서면으로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12월 초쯤에 바로 3박4일 포상휴가를 써서 학교에 가서 봉투에 봉인된 추천서를 받아왔다.
시간이 없어서 부모님께 국제우편으로 보내달라고 말하고, 난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이렇게 해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원서접수를 모두 잘 마칠 수 있었다.
그 뒤엔 12월 말쯤에 선물거래상담사를 보기로 신청해놔서 1달 정도 공부하고 봤었다.
2009년 3월 초에 전역이었는데 1월부터는 딱히 할 일이 없었고, 유학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이제 부대에서도 거의 최고참이었던 터라, 일도 많지 않고 지랄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1월부터 전역할 때까지는 책이나 읽으면서 편하게 지냈다. 
그래도 군대라 지겹다거나 답답하다거나 하는건 있었지만, 가장 편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긴 하다.

2월 중순쯤에 말년휴가를 갔다 올때까진 아무데서도 발표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2월 말쯤인가, 말년휴가 복귀한 뒤에 집에 전화를 했을때 부모님한테 결과 나온데가 있냐고 물어봤다.
(당시에 부모님께 내 공식 이메일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드려서, 혹시라도 무슨 연락이 오면 바로 알 수 있게 했었다.)
부모님이 머뭇거리시다가, 컬럼비아에서 리젝 메일에 왔다고 말씀하셨다.
난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내무실로 돌아갔다.
내무실에 누워있는데, 이게 진짠가 싶었다. 
기대는 별로 안했지만, 정말 떨어지고 나니 슬펐다.
그 때까진 좋은 곳으로 유학을 간다는 희망을 갖고는 있었는데, 하나 떨어지고 나니 자신감이 좀 사라졌다.

하지만 그 뒤로도 전역할 때까지 2~3군데 정도에서 더 리젝메일을 받았다. 
싸지방에 가도 메일을 확인하기가 점점 두려워졌다.
전역하기 전에 한군데에서라도 합격했다면 정말 기분좋게 전역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뭐 어찌됐든 전역은 기분좋은 일이다.
전역날인 3월 6일이 되어, 합격통보를 받지 못한 찝찝함은 있었지만, 기분좋게 전역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자유다, 나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 하는 기쁨에 사로잡혔지만
유학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날들 7 유학 준비 이야기

추석 전 주쯤에 휴가를 나갔다. 9박10일이라 이번엔 좀 여유가 있었다.
웬만하면 추석 전에 교수님들을 찾아뵈서 추천서 문제를 확정지어야 했다.
일단은 휴가나온 날은 집에서 쉬면서 이것저것 맛있는걸 먹었고..ㅋㅋ
다음날에 학교로 갔다.
학부때 인사도 제대로 안드렸던 교수님들께 갑자기 가서 추천서를 써달라고 부탁드리는건 좀 민망하고 뻘쭘한 일이었다.
하지만 교수님들이 다 좋은 분들이셔서,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지원하기로 했던 학교들에 대해서도, 다 좋은 곳이니 써보라고 하셨다. 
내가 휴가가 별로 없어서 다시 못나올수도 있다고 말씀드리자, 어차피 추천서는 인터넷으로 쓰는거니까
원서 넣고 나서 어디어디 넣었다고 전화나 이메일로 말해주면 알아서 써주겠다고 하셨다.
잘 끝나서 다행이고, 너무 감사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루이틀 정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추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SOP 준비를 해야했다.
그리고 원서를 쓸 학교도 정했으니 실제로 원서를 어떻게 쓰는지도 좀 알아놓아야 했다.
그래서 추석때는 좀 쉬면서, SOP 샘플을 모으고, 원서 지원 방법을 알아보았다.
추석이 지난 뒤, SOP샘플을 한뭉터기 프린트한걸 들고 기분좋게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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